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 9 (문단 편집) === 통상 시나리오 === * 184년 2월 [[황건적의 난]]과 [[도원결의]] >삼국 시대의 서막인 '황건의 난'. 유비, 관우, 장비 세 호걸이 죽을 때는 함께 죽기로 맹세한 '도원결의'로부터 게임이 시작됨. 선택 가능한 세력은 난을 일으킨 장각과 난을 진압하려는 하진. 장각은 인재 면에서는 불리하지만 장각 형제들이 강력한 병법을 구사하며, 병력에선 하진을 능가한다. 반면 하진은 수하에 유비 삼형제, 조조, 손견 등의 유능한 인재들이 다수 포진. 다만 하진 자신의 능력이 낮고 병력에서 열세다. 하지만 군주 능력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고 시리즈 전통적으로 황건적의 단점인 관직 임명 불가로 인해 장기전으로 갈수록 황건적에게 불리해진다. * 190년 1월 조조의 거병과 [[반동탁연합]] >조정을 농락하는 동탁을 치기 위해 각지의 제후들이 일어선 '반동탁연합'. 조조, 유비, 손견, 원소 등이 독립된 세력으로 등장하는 군웅 할거 시대. 동탁 휘하에는 최강의 무장인 여포가 있으며 병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함. 또한 전초 기지인 호로관은 난공 불락의 요새. 반동탁연합의 개별 세력으로는 동탁에게 적수가 안 됨. 다수 세력이 몰려 있는 북방보다는 공백지가 많은 남방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유리. * 194년 6월 [[여포]]의 연주 강탈과 [[소패왕]] 출진 >동탁을 제거한 여포가 조조로부터 연주를 탈취한 상황. 조조는 청주의 황건적을 진압한 직후인 만큼, 군의 사기는 왕성. 유비는 조조에게 공격당한 도겸을 구원하기 위해 소패에 주둔 중인 상태. 낙양과 서주는 각각 동탁과 조조에 의해 황폐해짐. 한편, 북방에서는 원소와 공손찬이 대치. 남에서는 유표를 공격하던 손견이 전사한 후, 장남 손책이 의형제 주유와 함께 강동 제패의 첫 발을 내딛고 있었다. * 200년 4월 [[관도대전|관도 전투]]와 중원의 패자 >조조는 원소와 화북의 주도권을 놓고 겨룬 '관도 전투' 직전. 조조는 헌제를 옹립한 후, 여포와 원술을 격파하여 수도 허창을 비롯한 비옥한 중원을 지배. 주위가 적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인재를 다수 확보. 원소는 공손찬을 무너뜨리고 하북을 장악. 조조를 압도하는 병력과 안량·문추 두 맹장을 보유. 한편, 유비는 조조의 손을 벗어나 서주에서 독립. 그리고 강동을 제패한 '소패왕' 손책도 중원을 넘보고 있었다. * 207년 1월 [[삼고초려|삼고지례]]와 [[적벽대전]] >오의 명장 주유가 조조의 야망을 분쇄한 '적벽대전' 전년. 조조는 관도에서 원소를 격파. 원씨 일족은 멸망하고 원상 형제는 공손강을 의지해 달아난다. 신야에 거점을 둔 유비는 군사 서서를 영입하여 조조의 남하에 대비. 강동에서는 손책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아우 손권이 뒤를 계승. 그 막하에는 주유, 정보 등 대대로 오를 섬겨 온 신하들 이외에도 노숙, 여몽과 같은 새로운 인재들이 속속 모여 들고 있었다. * 211년 7월 주유의 죽음과 마초의 복수 >마초가 조조에게 도전한 '위수 전투'. 적벽에서 승리한 오는 강릉을 점령하나, 중신 주유가 병사하여 유비에게 형주를 내준다. 유비는 손권의 누이 손상향과 혼인하고 형주 남부를 지배, '복룡' 제갈량과 '봉추' 방통까지 영입하여 세력을 확장한다. 남하를 단념한 조조는 후환을 없애고자 서량의 마등을 제거하나 아들 마초의 역습으로 장안을 잃는다. 마초는 모든 면에서 열세이지만 복수를 위해 전의를 불태운다. * 219년 7월 한중왕 유비와 관우의 불찰 >한중왕에 오른 유비는 관우에게 양양 공략을 명한다.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를 '오호장군'에 임명한 촉은 현재 최고 전성기. 한편 조조는 관우의 북상에 대비, 우금과 방덕을 파견한다. 오의 손권 또한 허술해진 형주를 취하고자 여몽에게 군사를 일으키게 한다. 여몽의 형주 공략군에는 아직은 무명이었던 명장 육손이 가세하고 있었다. * 225년 7월 남만왕 맹획과 제갈량의 남정 >제갈량이 남만왕 맹획을 진압한 '남만 정벌'. 조조의 후계자 조비는 '위'를 건국하고 '한'은 멸망한다. 유비는 의제 관우의 복수를 하고자 오를 쳤으나 명장 육손에게 이릉에서 참패를 당한 후,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며 세상을 뜬다. 이윽고 오는 '이릉 전투'를 계기로 형주 전역을 장악하게 된다. 한편, 맹획은 촉의 혼란을 틈타 휘하의 장수들을 거느리고 독립을 꾀한다. * 234년 4월 [[추풍오장원|제5차 북벌과 제갈량의 죽음]] >유명한 '출사표'를 올리고 시작된 제갈량의 '북벌'. 그 다섯 번째 시도인 '오장원 전투'. 위의 황제인 조예는 직접 오와의 전선에 나가 있었다. 촉에 대해서는 제갈량의 숙적인 사마의에게 전권을 일임. 촉은 남만을 제압하기는 했으나, 위이 비하면 여전히 국력과 군사력에서 열세인 상황. 한편, 손권은 '오'를 건국하여 육손을 중심으로 군을 정비하게 하였다. * 263년 7월 [[촉한멸망전|검각 공방과 촉의 멸망]][* 14PK의 특전 시나리오로 복귀하기까지 촉한의 멸망을 다루는 마지막 삼국지 시리즈였다. 이후 10, 11, 12, 13은 이 시나리오가 없다. 10은 253년을 기준으로 강유의 고전분투를 다루는 정도에서 끝났고 11의 마지막 시나리오는 남만정벌, 12는 제갈량의 1차 북벌이었다. 13의 경우엔 10과 같이 253년 강유의 북벌을 다루나 실제 역사가 아닌 위나라에서 [[관구검]], [[제갈탄]], [[문흠]] 등이 반란한 가상 시나리오다.] >촉의 멸망 직전. 사마씨 일족은 위의 정권을 장악. 사마소는 종회와 등애에게 촉 정벌을 명한다. 촉군의 중심인 강유는 건재하나, 그를 보좌할 만한 인재가 부족했다. 정사에서는 오가 촉에 대한 구원군을 파견하나 때에 맞춰 도착하지 못한다. 위가 촉을 병합하면 오로서도 대항할 수가 없어지는 상황. 전체 시나리오 중 가장 장수 수가 적으므로, 전력의 집중과 조기 공략이 관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